핵무장한 해적의 시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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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같은 피라미국가들도 美겨냥 핵보유 나서”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3일 미 상하원합동연설이 그동안 잠복해 왔던 핵 위기의 본질을 건드렸다며 세계가 냉전 종식 후 25년 만에 핵전쟁의 위협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새로운 핵시대(NEW nuclear age)’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네타냐후 총리가 이란과 핵협상을 비판한 것은 잘못이지만 핵전쟁을 우려한 것은 정곡을 찔렀다고 지적했다.

잡지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노벨 평화상을 안긴 결정적 이유였던 ‘프라하 선언’(2009년)이 나올 때만 해도 30년 뒤엔 핵무기 없는 세상이 가능하다는 장밋빛 전망이 돌았지만 2012년을 기점으로 핵무기는 오히려 늘어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미국과 러시아의 핵탄두 수는 각각 4500개 안팎으로 감소하긴 했지만 지난해 우크라이나 사태를 전후해 감소세가 멈췄다. 러시아의 국방예산은 2007년 이후 50%가 늘었는데 그중 3분의 1은 핵무기 개발에 쓰이고 있다. 이에 맞서 미국도 핵무기 현대화에 10년간 3480억 달러를 쓰겠다고 발표했다. 프랑스와 중국도 핵무기를 실어 나를 수 있는 잠수함과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보다 더 큰 문제는 비공인 핵클럽 국가들이다. 그중 가장 주목받는 곳은 파키스탄과 북한이다. 파키스탄은 인도에 대한 재래식 전력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전술핵무기를 10여 개나 더 늘렸다. 이코노미스트는 북한이 보유한 핵탄두 수가 1년 뒤 10개 안팎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냉전시대 핵무장이 동서 양대 진영의 현상 유지를 위해 이뤄졌다면 새로운 핵시대는 현상 파괴를 겨냥한다는 점에서 더 위험하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했다. 러시아와 중국은 물론이고 북한 같은 ‘피라미 국가(the smallest fry)’조차도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무너뜨리기 위한 수단으로 핵무장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또 냉전시대엔 핵 대결 전선이 동서로 단일화됐지만 새로운 핵시대엔 미국-러시아, 미국-중국, 미국-북한, 파키스탄-인도, 중국-인도, 이란-이스라엘 등으로 전선이 다분화되면서 위험성은 더 커진 반면 책임감은 더 줄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상황을 프랑스의 핵무기 전략가 테레즈 델페슈의 말을 빌려 ‘전략적 해적의 시대’라고 불렀다.

상황이 심각하지만 대중은 냉전시대에 비해 핵전쟁 위기에 둔감하거나 ‘설마’ 하면서 방관하고 있다. 따라서 세계 각국은 냉전시대에 필적할 외교협상을 강화해야 하며 그런 의미에서 미국과 이란의 핵협상은 의미가 있기에 네타냐후 총리의 비판이 잘못된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꼬집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해적#핵#핵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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