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 ‘가미카제 맹세’ 영상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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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장기 두건 쓴 日청년 울부짖듯 “조국 위해 죽겠다”
서울시립미술관 ‘…삼각관계’展 논란

10일 개막한 서울시립미술관 ‘미묘한 삼각관계’전에 걸린 고이즈미 메이로의 영상작품 ‘젊은 사무라이의 초상’. 일장기 두건을 쓴 젊은이가 가미카제 돌격을 앞두고 부모에게 이별을 고하며 감정이 고양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10일 개막한 서울시립미술관 ‘미묘한 삼각관계’전에 걸린 고이즈미 메이로의 영상작품 ‘젊은 사무라이의 초상’. 일장기 두건을 쓴 젊은이가 가미카제 돌격을 앞두고 부모에게 이별을 고하며 감정이 고양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아버지 어머니, 베풀어 주신 모든 것에 감사드립니다. 떠날 시간입니다. 이렇게 고결한 목적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일본 공군 조종사 복장을 한 젊은 배우가 울부짖듯 독백한다. 일본 작가 고이즈미 메이로가 2009년 제작한 9분 40초 길이의 영상작품 ‘젊은 사무라이의 초상’. 고글과 일장기 두건을 쓴 청년이 “조국을 위해 자랑스럽게 죽겠습니다!” 외치고 있는 곳은 서울 중구 한복판의 서울시립미술관 3층 전시실이다.

5월 10일까지 이곳에서 열리는 ‘미묘한 삼각관계’전은 ‘한국 중국 일본의 차세대 대표작가 3인전’을 표방해 설치와 영상 등 작품 30여 점을 선보이는 대규모 기획전이다. 시립미술관은 지난해 3월 한국의 양아치(본명 조성진), 중국의 쉬전, 일본의 고이즈미를 참여 작가로 선정했다. 홍이지 큐레이터는 “1970년대에 태어난 젊은 작가들을 통해 1990년대 이후 3국의 문화적 관계맺음을 살펴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논의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미술관이 ‘가미카제’ 파일럿의 맹세를 담은 영상물을 내건 데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10일 오전 이곳을 찾은 회사원 이진호 씨(39)는 “근처에 점심 약속이 있어 미술관에 들렀는데 뜻밖에 일본 군인의 피 끓는 충성 맹세를 듣고 나니 기분이 이상하다”고 했다.

목소리로 영상에 개입하는 작가는 “네 안의 사무라이 정신을 전율시켜 온몸을 맡겨 봐”라고 배우에게 요구한다. 영상 말미 출전을 만류하는 모친의 오열 소리가 들리지만 반전(反戰) 메시지는 미미하다.

고이즈미의 다른 영상작품 ‘오럴 히스토리’는 한술 더 뜬다. 작가는 2월 도쿄 신주쿠 거리를 지나는 행인 170여 명에게 “1900∼1945년 일본 역사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지” 물었다. 영상은 47분간 이들의 입만 보여준다. “전함 야마토.” “오키나와가 공격당했다.” 머뭇머뭇 내놓는 짤막한 대꾸 사이로 섬뜩한 이야기가 들려온다. “일본은 대외 침략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나라 위해 목숨 버린 진주만 용사들을 존경한다. 그때 살았다면 나도 그렇게 목숨 바쳤을 거다.” “진주만은 일본의 위대한 승리였다. 그 전쟁은 아시아인이 백인과 대등하게 맞설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일본에 비해 한국과 중국 작가의 작품은 뚜렷한 메시지를 드러내지 않는다. 양아치의 ‘바다소금극장’은 웹 가상세계를 실물로 구현한 기존 작품과 이어진다. 식료품 껍데기를 판매하는 상점을 차린 쉬전의 ‘상아트 슈퍼마켓’은 2007년 시작한 작업의 반복이다.

미술관 측은 “논란은 예상했다. 현재의 일본인이 옛 역사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 객관화된 시선으로 확인하려 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3층 전시실 천장에는 B-29 폭격기를 스케치하는 영상이 돌아간다. ‘오럴…’ 속 한 행인의 퉁명스러운 대답이 영상 위에 겹쳐 울렸다. “1945년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그 전의 역사? 몰라.”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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