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세 언니들’ 장소연·정대영·이효희, 관록의 힘 빛났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3월 9일 06시 40분


한국도로공사 선수들. 스포츠동아DB
한국도로공사 선수들. 스포츠동아DB
■ 도로공사 10년만에 우승 이끈 원동력

1. 장소연·정대영·이효희, 9연승 호흡
2. ‘신데렐라’문정원 27연속서브에이스
3. 니콜, 한세트 25점 몰아치기 등 투혼

참으로 먼 길을 돌아서 왔다. 도로공사가 마침내 NH농협 2014∼2015 V리그 여자부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V리그 원년이었던 2005년에 이어 10년만이다. 7일 수원실내체육관에서 벌어졌던 3위 현대건설과의 6라운드 맞대결에서 3-1로 승리하며 남은 2경기 결과에 관계없이 우승을 확정했다. 언니들의 팀답게 4세트 우승결정 포인트는 최선참 장소연의 이동공격이었다. 도로공사는 27일부터 현대건설-IBK기업은행의 플레이오프 승자와 5전3선승제의 챔피언결정전을 벌인다. 아직 6개 팀 가운데 유일하게 가슴에 별이 없는 도로공사는 통산 3번째 챔피언결정전 우승에 도전한다. 도로공사의 정규리그 우승은 언니들, 문정원, 니콜 3박자가 만들었다.


● 110세 언니 3총사

시즌을 앞두고 도로공사는 과감한 투자를 했다. FA시장에서 이효희와 정대영을 영입했다. 예상 못했던 공기업의 투자였다. 초반 출발은 불안했다. 그러나 3라운드부터 도로공사는 성큼 앞으로 나섰다. 베테랑 3총사가 베스트6에 모두 들어가면서 조직력의 배구가 차츰 자리를 잡아갔다.

41세 장소연과 34세 정대영이 중앙에서 잔볼 배구를 했다. 외국인선수 시대에 잊어버리고 있었던 한국형 배구의 장점을 되살려냈다. 35세 이효희의 절묘한 배분과 정확한 토스가 언니들의 경험과 배구지혜를 최대한 살렸다.

나이합계 110세의 삼총사는 배구를 쉽게 했다. 플레이를 예측하는 머리와 눈썰미에 상대는 힘도 써보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졌다. 공교롭게도 장소연이 15세 어린 주전센터 하준임을 제치고 스타팅에 나가면서부터 도로공사의 연승행진은 시작됐다. 3∼5라운드 도로공사가 기록했던 9연승 동안 3-0 완승도 무려 5차례였다.

결국 그 연승이 도로공사에 정규리그 우승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안겼다. 중앙이 강한 팀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도로공사는 31세의 리베로 김해란까지 포함하면 어느 팀보다 중앙이 강했고 쉽게 점수를 주지 않는 피곤한 팀이 됐다. 서남원 감독은 우승확정 뒤 인터뷰에서 “언니들의 힘”을 가장 먼저 언급했다.

● 신데렐라 문정원

그동안 도로공사는 풍부한 레프트 자원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실력이 고만고만했다. 황민경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 자리를 맡겨도 2%가 모자랐다. 공격에는 장점이 있었지만 서브리시브에서 조금씩 약점이 있었다. 전력이 풍부하다는 것은 상황에 따라 다양한 카드를 쓸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었다. 네가 그 자리에 나가지 못하면 모두가 속으로 불만을 가질 수 있는 구조였다.

이런 상황에서 4년차 문정원이 혜성처럼 나타났다. 시작은 원포인트 서버였지만 차츰 공격에서도 능력을 보여줬다. 서남원 감독은 문정원이 리시브에서 안정감을 보여주자 포지션 변경을 결정했다. 니콜을 레프트로 돌리고 문정원을 라이트에 내세웠다. 나머지 한자리는 부상에서 복귀한 황민경이 채웠다. 이 결정으로 도로공사는 니콜의 수비능력까지 덤으로 살리는 등 팀플레이가 이전보다 더욱 탄탄해졌다. 문정원은 27연속경기 서브기록을 이어가면서 새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필요할 때마다 빠르고 힘 있는 공격으로 니콜에 몰렸던 공격부담을 덜어줬다. 강한 서브로 상대 팀의 리시브를 흔들어 도로공사의 장점인 중앙에서의 블로킹을 더욱 쉽게 만들었다.

반 한국사람 니콜

3시즌 째 도로공사 유니폼을 입은 니콜은 최고의 공격수였지만 봄 배구와는 인연이 없었다. 2시즌 연속 4위에 머문 팀 성적 때문에 항상 3월에 쓸쓸히 귀국 비행기를 탔다. 지난 2시즌동안 미국 국가대표팀에 차출되면서 팀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도움을 주지 못한 때도 있었지만 팀을 위한 충성심은 누구도 따르지 못했다.

이번 시즌 니콜은 다행히 국제대회 출전이 없었다. 새로운 세터 이효희와 시즌 초반 호흡이 맞지 않았지만 영리한 선수답게 쉽게 적응해나갔다. 팀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자신이 먼저 나섰다. 코칭스태프에게 먼저 회식을 제안했고 자기 지갑을 열었다. 누구보다 동료들과 친하게 지냈고 동료들을 고맙게 생각했다. 그런 배려가 서로에게 큰 힘을 줬다. 동료들의 공격이 터지지 않을 때는 자신에게 집중되는 토스에도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 세트에서 무려 25점을 몰아치는 진기록을 세우는 등 자신이 팀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았다. 7일 현대건설와의 중요한 경기에서도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하며 팀이 중요한 점수를 선물했다.

서남원 감독은 니콜이 이런 마음씀씀이에 감사했다. “한국 사람이 다 됐다. 정말 오래 같이 있고 싶은 선수”라고 했다. 다음 시즌 외국인선수 드래프트제도의 도입으로 니콜은 이제 정든 팀을 떠나야 한다. 그래서 이번 귀국길에는 꼭 우승 반지를 가지고 돌아가려고 한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트위터@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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