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글쓰고, 아들은 그리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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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동시집 ‘엄마의 토끼’ 낸 성미정 시인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졸업까지 성장기 담아… “평범하게 잘 자라나는 아들이 고마워요”

엄마 성미정 시인과 아들 배재경 군.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엄마 성미정 시인과 아들 배재경 군.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엄마 성미정 시인(48)은 최근 올해 초등학교를 졸업한 외아들 배재경 군(13)에게 특별한 선물을 건넸다. 아들과 아들 친구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해 졸업할 때까지 성장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교감하며 쓴 동시집 ‘엄마의 토끼’(난다). 이 책에는 아들이 색연필을 손에 쥐고 그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모아 온 그림을 선별해 어울리는 동시와 함께 실었다.

6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성 시인은 “학교에 입학한 아들을 쫓아다니며 새로운 경험도 하고 어릴 적 나를 다시 만나면서 첫 동시를 쓰게 됐다”며 “동시를 쓰면서 아이와 성장을 함께 할 수 있었다”고 했다. 1998년 배용태 시인(44)과 결혼한 성 시인은 2002년 5월 친구들과 함께 노는 것을 ‘최최고’로 좋아한다는 재경 군을 낳았다. 부부는 시를 쓰며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에서 장난감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엄마가 쓰고 아들이 그림을 그린 동시집엔 공부의 어려움, 바른말 쓰기, 외둥이에 대한 편견, 체험 활동 등 생활밀착형 소재가 가득하다. 교훈적이거나 마냥 동심을 미화하지 않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루는 아들이 엄마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엄마, 선생님이 까닭을 들어 설명하라고 하는데 까닭이란 말을 몰라 머릿속이 하얘져요.” 이에 엄마 시인은 ‘까닭이라는 닭을 본 적이 있니’란 시로 아들과 고민을 함께 한다. “난 받아쓰기 급수 4급에 나오는/닭과 수탉 그리고 암탉은/틀리지 않을 자신 있는데/까닭을 말하는 건 아직 어려워//(중략)생각의 알 속에 살고 있다는 까닭/곰곰이 생각해보면 생각의 알을 깨고/태어난다는 까닭//”

시인은 욕을 내뱉은 아들도 마냥 꾸짖지 않는다. 아들은 자신의 귀에 대고 ‘개새끼’를 ‘넣어주는’(들려주는) 친구 이야기를 꺼내며 자기도 욕을 하고 싶다고 했다. 엄마의 응수는 이렇다. “귓속에 강아지가 사니까/귀지 파도 귀가 간질간질//참다 참다/결국 입 밖으로 내보냈어/민이가 내 귓속에 넣어준/강아지 한 마리//”

인터뷰 중 엄마가 혼자 사진 찍기 외로울까봐 아들 재경 군이 왔다. 엄마보다 한 뼘이나 키가 더 큰 아들은 “시집을 받고서 재밌고 기뻤어요. 엄마가 제일 자랑스러워요”라고 했다. 성 시인은 “엄마가 감정 조절을 못하면 자녀에게 잔소리를 쏟아내기 마련인데, 나는 시로 풀었기에 아들을 많이 혼내지 않았다”고 했다.

“아들이 큰 성공을 못 해도 좋아요. 엄마가 아들이 조금씩 성취할 때마다 크게 기뻐했다는 것만 알아주면 좋겠어요. 평범하게 자라는 것이 잘 자라는 거예요. 자녀가 스마트폰을 얼마나 오래 쓸지 같은 평범한 고민을 하게 해준 아들이 고마워요.”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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